잡담

불안감 해결 방법, 호감을 악용하는 거짓말쟁이들의 전략

오늘의관심사 2024. 8. 31.

이번 포스팅에서는 인간이 왜 불안하고, 그 불안감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관한 내용을 적어뒀습니다. 이해가 된다면 충분히 여러 방식으로 응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글을 읽고 계신 분께서 최근 증폭하고 있는 거짓말쟁이들을 구별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인간을 지배하는 본능의 공식

인간뿐 아니라, 현존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포유류들은 불안한 상태를 편안한 상태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얻습니다. 그 만족감이 주로 도파민과 같은 호르몬에 의한 보상으로 이어지며, 전신에 퍼지는 행복감에 의해서 그 선택이 '옳다'라는 감각적 결론에 도달하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메커니즘을 다시 이야기 하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단지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 행동이나 선택이 무엇이 됐든 간에 긍정적으로 두뇌가 인식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같은 이유로, 인간은 마약에만 중독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어떤 생각이나 공유된 느낌 같은 개념들에 중독되며, 단기간의 중독 이후에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심리상태의 기준 자체가 변경되는 사례가 발생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세뇌 작업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셨다면, 눈치가 빠르거나 똑똑하신 분들은 어떻게 해야 더 강력하게 인간의 본능을 이용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더 강한 불안감을 조성해서 궁지에 몰거나 궁지에 몰린 사람이 만족할만한 강렬한 쾌락을 선사하면서 어떤 특정 메시지를 주입한다면 그 메시지는 그 사람의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 메시지를 위해서 목숨을 걸기도 하며, 그렇게 개조된 인간은 죄책감을 체감하지 못합니다.

마약이나 종교에 빠진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버리거나 심지어 아이들을 제물로 삼고 행복감을 느끼려고 들기도 하며, 마약이나 도박 등에 빠진 아저씨들이 더 강렬한 자극을 위해서 만만한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에 속합니다.

이 모든 사건들의 발생 원인은 선과 악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자연계에 선과 악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해하는 편이 정상적 일 것입니다. 이익이냐 손해냐 라는 개념에 있어서, 집단과 개인 중에서 어느 쪽이 이익을 얻기에 더 합리적인가에 관해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됩니다.

착한 척, 정의로운 척을 하는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별에 무관하게 이익을 얻지 못한 상태를 불안하게 인식하는 것은 본능적인 자연스러운 감각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이익을 얻으면 다른 사람에 비해서 스스로가 우월하다는 느낌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 느낌은 생존에 성공했다는 만족감에 가깝습니다.

착한 척을 하거나 정의로운 척을 하면서 어떤 메시지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메시지 대부분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부터 출발합니다. 세상은 아주 조밀하게 엮여 있습니다. 세상에 발생하는 수많은 폭력들이 인류를 발전시켰다는 아이러니하고 잔인한 규칙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대립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아주 부강한 나라가 된다면, 가까운 중국과 일본은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경제를 기반으로 세운 자본력으로 주위 국가의 가치를 빼앗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여러 국가의 스파이들이 한국의 성장을 방해하거나 관리하려고 들기도 합니다.

대부분 역사 왜곡부터 시작하는데요. 한국의 역사는 상당 부분 왜곡되어 있습니다. 만약 역사에 관해서 올바른 기준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여러 나라들의 관점을 동시에 주목해야 될 것입니다.

한국의 근현대사 또한, 여러 다른 지역과 국가들이 당시에 조선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 지를 주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들이 당시 조선 사람들은 노예들이 대다수였으며, 그 노예들의 지지를 얻어서 일본 제국이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노예들을 빼앗긴 양반과 지주들이 만주에 올라가서 대항하거나, 땅을 인정 받은 양반들은 반일에서 친일로 살아갔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한국의 여러 드라마들은 노예 취급을 받았던 다수의 사람들이 조선을 위해서 활동 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일본 제국이 유대 자본가들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그 작은 틈을 국가 건국 세력들이 비집고 들어갔으며, 대한민국의 건국은 이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듯이 노예 해방에 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계급 의식에 사로잡혔던 북쪽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을 노비로 만들기 위해서 쳐들어왔으며, 그렇게 시작된 6.25 전쟁을 극복한 전쟁 영웅들의 목적은 자손들을 노비로 만들지 않는 것에 있었습니다.

6.25를 이념의 관점에서 가르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그런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은 강조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으며, 애초에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 했습니다.

공산주의나 해방 명분 같은 것은 그저 그럴듯한 가짜 명분에 불과하며, 약탈 욕에 의해서 전쟁에 동의한 무수히 많은 북한 사람들과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소련 출신 스파이가 공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최종적으로 방어에 성공하면서 한국인들은 노예에서 해방됐으며, 노예 제도를 그대로 가지고 있던 북한은 현재 소수의 권력층과 다수의 노예로 구성되어 있는 옛 조선사회로 돌아갔습니다.

불안감 극복, 내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나이가 많은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15살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가 50살에 깨어났다고 가정해 본다면, 아마도 50살에 깨어난 그 사람은 스스로를 15살로 인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불편하거나 불안한 상황을 회피하면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그 만큼의 시간을 살아가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수많은 불안감을 인지하고 풀어왔던 사람들은 나이에 비해서 훨씬 더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인지력의 차이가 사람의 격차를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특별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대부분 인지력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1년이라고 느끼는 시간을 특별한 사람들은 10년처럼 사용하기도 합니다. 결국, 불안감을 극복하고 세상을 인지했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며, 생존 능력 자체가 더 증가하기 때문에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 한번의 기회 만에 최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결국 시간을 갈아 넣어서 몇 번이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단련하기 위해서라도 시간의 흐름을 인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남들이 10년을 살아갈 때, 나만 100년을 살아가는 것과 같을 정도의 경험을 쌓을 수 있다면, 일생에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어떤 관념에 사로잡혀서 만족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기를 완전히 포기한 부류들입니다. 그들은 잘 만들어진 장난감처럼 처음 만들어진 그대로 사용되다 버려지는 소모품으로 스스로를 전락 시킨 것입니다.

저는 그럼에도 세상은 여전히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적 특이점에 의해서 발생되는 거대한 흐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취미 생활 겸으로 해서 이 블로그에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하고 적어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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