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리뷰

오징어 게임2 리뷰, '빵과 복권'에 관한 개인적 분석

오늘의관심사 2024. 12. 29.

이 작품에 관한 악평이 상당히 많이 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재밌게 봤습니다. 더 솔직하게 적어두자면 현실세계에 발생하게 될 논쟁에 관한 예고편 같았습니다. 오징어게임2는 작품성이 높기 때문에 회차마다 리뷰를 적어둘 생각입니다. 

※ 작품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에피소드1, 빵과 복권이 가지고 있는 의미 

1편에서도 나왔던 딱지남을 찾기 위해서 성기훈이 움직이는 것으로 작품이 시작됩니다. 그는 오징어게임 우승자였지만 사람 한명 목숨당 1억원의 상금에 관한 죄책감 때문에 죽은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 오징어게임을 멈추는데 돈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랜시간이 흐른 후에 성기훈에게 돈을 받아서 딱지남을 찾던 조폭들은 결국 딱지남을 찾게 되는데요. 딱지남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딱지남은 공원 노숙자들에게 빵과 복권을 내밉니다. 둘중 하나만 선택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대부분의 노숙자들은 복권을 선택합니다. 복권은 모두 꽝입니다. 

밟힌 빵들은 포기한 목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복권은 모두 나눠줬지만 빵은 남았습니다. 딱지남은 남아 있는 빵을 바닥에 쏟아버리고 발로 밟습니다. 그리고 이 빵을 버린 것은 노숙자들이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딱지남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숙자'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부터 접근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노숙자는 사회에서 금전적으로 파산한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돈이 있다면 길에서 노숙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숙자는 빵을 먹고 힘을 내서 일을 하러 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복권을 선택했습니다. 실패 가능성이 높은 '게임'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빵(생명)을 포기하고 말입니다. 

여기서 작가는 딱지남의 행동을 통해서 오징어게임 주최자들이 '오징어게임'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패배한 사람들 스스로가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딱지남이 사람들을 오징어게임으로 이끌어서 그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오징어게임을 사람들이 너무도 원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의견은 존중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품 속에서 표현되고 있는 딱지남은 어쩌면 사람을 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는 인간성이 남아 있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징어게임을 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명보다 게임을 선택했던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갑니다. 딱지남에게 있어서 오징어게임은 세상을 정화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딱지남은 고용해서 오징어게임을 반복적으로 시도하는 목표의 이면에는 인류선별이라는 거대한 계획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징어게임의 첫번째 경기에서 표현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의미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게임에서 활용되는 행동 인식 로봇이 인간을 죽이는 장면은 로봇이 인류를 대신 할 수 있다는 미래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류 선별 계획, 지구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 '인간'

엘리트 계층은 꽤 오래전부터 인류 선별에 관한 메시지를 여러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노출시켰습니다. 제가 이야기 하고 있는 관점은 작품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 관한 것입니다. 지구 환경에 문제가 생기거나 거대한 전쟁이 발생하거나 하는 거의 모든 사건들은 인류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을 그 원인으로 합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엘리트 계층들도 분명히 잘 알고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 발전의 효율성을 위해서 인류의 숫자를 대폭 증가 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했었기 때문입니다. 

로봇과 인간 누가 더 효율적일지는 너무 분명합니다.

하지만, 중간관리자는 양자컴퓨터 기반 AI가 작동하면 될 일이고 노예 계층은 로봇으로 대체하면 될 일입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환경은 빠른 속도로 회복 되겠지만 다수의 인류는 크게 반발해서 기존의 문명을 파괴하려고 할 것입니다. 마치, 영국의 러다이트운동(Luddite)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날이 오기전에 인류의 숫자를 줄여두는 편이 엘리트 계층의 관점에서는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그럼 누구를 제거해야 될까?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징어게임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전체를 두고 진행하고 있는 살벌한 생존 게임을 '오징어게임'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자에 앉아야 되는 순간에도 과연 모두 행복할까요

솔직하게 사실은 다들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대의를 위해서 행동하려고 드는 사람들 중에서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의 만족감'을 위해서 움직입니다. 더 직설적으로 적어두자면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감각을 위해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인류 전체를 위한 진정한 진보는 과학 발전에 의한 문명의 진보에 있으나 미래사회가 준비해둔 의자는 너무 적습니다. 의자 하나에 앉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경쟁해야 될 것입니다. 의자에 앉지 못하면 선별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인류 보존이 중요했기 때문에 다음 기회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티켓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추가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의자에 앉는데 성공했는데 누군가가 의자에 앉지 못해서 죽을 위기에 처했다면 의자를 양보 할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요? 아마도, 이미 의자에 앉은 사람을 죽이고 그 의자를 뺏는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앞으로 과도기에 볼 수 있는 중요한 장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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